주공왕 희이호가 경수로 놀러갔을 때 밀국의 군주인 강공과 대동하면서 밀국의 세 미녀를 보게 되었다. 공왕은 그 세 미녀를 바칠 것을 요구하였으나 강공은 거절하였고, 노한 공왕은 밀국을 토멸해 버렸다. 그렇게 여자 문제로 함부로 제후국을 토멸하였기 때문에 주나라의 왕도가 무너져 갔다. 이러한 사건은 기원전 943년에 일어났는데, 이는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여자 문제는 상대방을 토멸하거나 불신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로 보이게 되었고, 이는 여성의 권리를 강조하고 중요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었다.